생각 보따리/우리의 삶, 문화

제주굿과 기메

검피아줌마 2009. 2. 18. 14:44

제상 주변에 걸려있는 종이제작물…백지에서 형형색색 기메까지 다양

저마다 다른 의미품은 신의 세계



  굿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제상 주변에 걸려있는 종이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기메다. 제주굿에서는 종이로 만든 장식물을 통틀어 그렇게 부른다.

 기메는 잎이 푸른 대에 백지를 묶어 맨 것이 기본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당에 있는 신목(神木)을 떠올리게 한다. 와흘본향당 같은 곳을 가보면 아름드리 팽나무의 가지에 백지류, 색색의 저고리, 실 등을 걸어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신목을 통해 신이 내려온다고 믿은 탓에 주변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기메도 마찬가지다. 온갖 모양으로 오려내 신을 맞이한다.

 일찍이 '제주도 무속의 '기메'고'를 쓴 민속학자 현용준 선생은 기메를 크게 5가지 형태로 분류해놓았다. 잎이 푸른 대에 백지를 묶어맨 것(감상기), 잎이 푸른 대에 백지와 인형지제물(人形紙製物)을 묶어맨 것(체삿기, 영겟기, 성줏기), 잎이 푸른 대에 사람 형상의 종이를 묶어맨 것(살전지), 사람 형상으로만 된 것(오방기, 오방각기, 줄전기, 시왕기, 멩감기), 고깔을 마른 대에 끼운 것(칠원성군송낙), 고깔과 사람 형상, 소지(燒紙), 지폐를 마른 대에 끼운 것(할망송낙), 뱀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칠성신앙), 장대에 잎이 푸른 대와 푸른 소나무 잎을 묶고 요령과 창호지의 기 등을 달아맨 것(큰대)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오전 칠머리당영등굿 환영제가 열린 제주시수협 위판장. 김윤수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장의 몸놀림이 빨라지고 있었다. 신을 청해들이는 대목인 만큼 무악기 반주는 한층 거셌다. 삼각 모양으로 접은 윗부분에 국수가닥처럼 자른 종이를 잇댄 기를 매단 푸른잎의 대나무가 허공을 갈랐다. 1만8천 신들의 문을 열게 한다는 감상기였다.

 제청 윗쪽에 형형색색의 기메가 걸려있었다. 영등환영제가 송별제에 비해 간소하게 치러지는 탓인지 기메가 다종다양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제상 위에 길게 늘어뜨려진 기메는 굿판의 분위기를 냈다.

 김윤수 심방은 기메 종류만 60종이 넘는다며 그것을 두고 커튼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임금에 대한 경외감을 표시하듯, 신을 바로 볼 수 없으므로 이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메는 신에게 존재를 알리고, 신의 모양을 내고, 그 깃발을 보면서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한다고 했다. 굿을 통해 인간이 염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메에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를 드러내듯, 기메는 저마다 의미를 담고 있다. 감상기에 사람 모양의 종이 제작물을 더한 영겟기는 죽은 영혼을 상징하고, 사람 모양의 창호지를 오려낸 후 잎이 푸른 대에 묶어매는 군문기는 이미 모셔놓은 신이 나가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고 믿는다. 사람의 눈, 코, 입 같은 구멍을 오려내고 다리와 발도 만드는 오방각기 역시 신의 출입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기메란 말은 뜻이 분명치 않다. 굿의 현장에서 만난 심방(무당)들은 "오래전부터 기메라고 불렀다. 종이를 기에 매단다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닐까"라고 입을 모았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그 경우엔 기매라 써야 맞다. 2005년과 2006년 두차례 제주굿에 등장하는 기메의 독특함을 널리 알리려는 뜻으로 제주민예총 등에서 기메전을 연 적이 있지만 그 때도 기메란 말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풀지 못했다.


"종이로 오려낸 신화적 상상력" 기메의 예술적 미 주목

▲/사진=강경민기자 gmkang@hallailbo.co.kr

 지난 18일 제주시 사라봉 자락에 있는 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 사무실. 이튿날 열리는 영등굿 환영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기메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 흥미롭다. 오려낼 부분을 표시하거나 자로 재는 법 없이 곧바로 가위로 이곳저곳을 잘라낸다. 기메 하나를 만드는 데 5분이면 족하다. 종이를 접는 방법이나 오려내는 부위에 따라 사람 얼굴이 되고, 온갖 문양이 나타난다. 화선지위에 떨어진 묵이 어느 방향으로 번질 지 모르는 것처럼.

 이 때문일까. 두차례 열린 기메전은 기메의 예술적 상상력에 주목한 전시다. 신들의 이야기를 종이예술로 옮겨놓은 게 기메라는 거였다. 혹자는 기메를 종이조각이라고 불렀다.

 굿과 떼어내 기메를 보더라도 종이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며 신체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군문기, 제상 옆에 걸어 초롱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통지전<사진 위>, 구멍숭숭 모양을 낸 색지를 멋쟁이처럼 껴입은 발지전<아래> 등은 눈길을 잡아끈다. 예전에는 창호지나 백지를 주로 썼다고 하지만 30~40년전부터 분홍, 보라, 노랑, 초록, 빨강 종이로 만든 기메가 늘면서 제청이 한층 화려해졌다. 최근들어 장식적 기능이 강화되면서 종이만이 아니라 천으로 기메를 만든 사례도 봤다.

 기메 제작은 모든 굿의 시작이다. 심방들은 굿에 앞서 홀로 앉아 기메를 오린다. 굿을 청한 주인만이 제작 장면을 지켜볼 뿐이다. 기메 만드는 일이 끝나면 기메고사가 행해졌다고 한다.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고문을 맡고 있는 양창보 심방은 "기메 제작을 끝낸 뒤 문전에 큰 상을 차려서 앉은굿으로 기메선생 이름을 부르며 기메고사를 올렸다"고 했다. 기메선생은 굿이 시작된 이래 기메를 잘 만든다고 이름난 심방을 일컫는 말. 기메가 심방에서 심방으로 이어지며 그 종류를 더해가고 한층 정교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진선희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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