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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신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시간여행 - 대정지역 당문화

검피아줌마 2010. 11. 15. 16:49

 

우리것 찾기 교육의 일환으로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주여신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시간여행 네번째 답사.

제주신화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보고 그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보는 시간.

  대정지역에 있는 다섯군데의 당을 답사하였다.

강사는 김정숙 애월고등학교 선생님.

 

김정숙쌤은 대정지역이 동부지역에 비해 당문화가 발달되지 않았던 여러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크게는 (1) 농토 발달(먹고 살만함. 희구성의 약화) / (2) 카톨릭의 서부지역 전파 /

(3) 유배문화에 기인한 유교문화의 영향 / (4) 일제강점기의 신목파괴 등을 꼽으셨다.

 

안성리 동문 밧 산짓당 입구이다.

이 곳은 대정읍 안성리 추사적거지에서 북쪽으로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간 곳의 전답 사이에 마련되어 있다.

 

일뤠당(7일) 계보이며, 메를 4그릇 올린다. 해신당이 아니므로 돼지고기를 올리지 않는다.

팽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있으며 가지에 명실이 잔뜩 걸려져 있다.

 

산짓당은 본풀이로 보아 전형적인 관청당이며 본래 보성리에 서문밧 큰남밧당, 가원당이 따로 있었으나

이들 당이 없어져 다닐 수 없게 되자 모두 안성 산짓당에서 함께 모신다.

큰남밧당은 보성 사람들이 낙천(혹은 조수)에서 몰래 신체를 훔쳐 와 설립한 당이다.

낙천당이 영기가 세고 그 마을 사람들이 그 덕에 잘 산다고 믿어 몰래 가지 가른 것이다.

 

현재도 사람들이 찾아 왔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가지에 천원짜리 지폐가 명주실과 함께 묶여 있었다.

 

보성리 하동 서문골 과원당 가는 길

 

대정현성 안에 위치하고 있는 당으로 현재는 폐당이다.

주변에 대정현 성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당안을 살펴 보았으나 전혀 당의 흔적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흔히 신목으로 쓰이는 팽나무도 없었으며 주변에 녹나무가 크게 번성하고 있었다.

과원당으로 가다가 만난  동네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안쪽으로 팽나무가 크게 자라고 있었는데 밭주인이 베어버렸다고 한다.

현재 보성리 사람들은 이곳 대신에 인성리의 산짓당에  다닌다고.

 

둘러 나오는 길 주택 울타리에 가지를 뻗은 수세미가 주렁주렁.

 

길 건너편에는 예전 성문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고 하는 대정 돌하르방의 모습도 보인다.

육지의 장승과 같은 역할을 했던 돌하르방의 코는 사람들에게 시달린 탓인지 남아 있지 않다.

 

신평리 본향 일뤠당 입구.

대정읍 신평리 마을 북쪽 동산에 있다.

 

신목인 팽나무.

이 당은 저지 허릿당에서 가지 갈라 온 당이다.

이 때문에 이 당에서 모시는 일뤠할망은 저지 허릿당의 큰딸이라는 전승이 있다.

이 당은 대정 고을에 부임하거나 이임하는 목사들까지 하마하여 절을 해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영기가 센 당이라 전해진다.

 

이재수의 난 당시 이재수가 출정에 앞서 이 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이 곳은 제를 지낸 후 남은 제물 등을 모두 불에 태워 흔적을 없애는 특징이 있다.

 

신평 일뤠당을 나오다 발견한 개구리참외.

 

이것은 무엇일까?

제주시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길이나 들에 난 열매나 풀, 꽃이름 등을 잘 모른다.

다들 비슷비슷해보여서 난감하다.

특히 이렇게 지나다 발견한 이름 모를 열매... 도대체 뭐지???

 

해신계 신당인 상로1리(산이수동) 본향 동산이물당이다.

송악산이 보이는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 부근에 있다.

 

하모리 섯사니물당에서 가지가른 당이며 해신계 신당답게 제물로 돼지고기도 가능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본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촬영장.

주변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상귀리 황다리궤당 입구

 

이 당에는 두명의 신이 있는데 안쪽엔 부인인 보름웃도 송씨부인이,

바깥쪽엔 보름알또 강씨영감이 자리잡고 있다.

 

흰 비둘기 한 쌍이 날아 와 황달궤 천년 퐁낭 아래 좌정하자 당이 생겼다고 한다.

 

여자가 안 자리를 차지하고 남자를 내쫓는 것은 흔치 않는 경우이다. 부부라도 살림을 가르게 되면 멀리 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당의 강씨 하르바님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담 바깥쪽의 작은 동굴로 좌정했다.

그래서 이 당에서 굿을 할 때는 하르방을 할망곁으로 청하여 같이 대접하였다고 한다.

 

여성의 중요부위처럼 생긴 바깥 강씨 영감 제단.

보통 '보름웃또' 라는 신명은 흔히 남성신에게 붙여지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이 당처럼 여성신에게 그러한 신명이 붙는 예는 드물다.

강씨영감에게는 돼지고기를 제물로 바친다고 한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제주는 신화의 70%이상이 여신이다.

그 만큼 제주의 문화는 '여성문화'라고 할 수 있다.

제주를 지탱해 온 것은 척박한 땅에서 자손들을 먹이고 입히려

긴긴 하루 머릿수건 한 번 벗지 못한 채 살아 온 제주의 어머니, 백주또 여성들이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제주의 문화는 신화속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제주도의 무속신화는 당대에서 중심이라기보다는 주변에 머물러 있던 여성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어왔다는 점에서

무속신화를 여성과 관련시켜 연구해 보아야 할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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