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보따리/다녀왔어요!

천년의 고도 경주-둘째날(7월 24일)

검피아줌마 2009. 2. 9. 17:17

오늘 일정 : 석굴암 - 기림사 - 골굴암 - 감은사지 - 문무대왕릉 - 신라역사과학관 - 분황사 - 김유신장군묘 -안압지 연꽃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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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입을 쩝쩝거리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별로 없네요.

그나마 저녁뷔페는 괜찮은데, 아침에 뷔페를 먹는건 좀 고달프다고 할까요..

어찌되었든 걸어다녀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아 억지로 먹어뒀습니다.

아침먹고 로비에서 한컷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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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해 둔 신라사람들의 테마투어버스 코스에 석굴암이 빠져 있어서(요일별로 투어코스가 달라요.),

덥기 전에 일찍 토함산에 가보기로 했답니다.

구불구불 한참을 올라갔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네비게이션이 반대로만 방향을 가리켜서 네비 무시하고 도로표지판에 의지하며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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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전세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석굴사)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전세의 부모란 김대성이 진골 김씨 왕족임을 생각할 때 아마도 태종 무열왕계의 왕과 왕족을 가리키는 것이며, 김대성이 죽은 후에도 국가적으로 석굴을 완성한 것을 보면 석굴암이 개인적인 곳이 아니라 국가적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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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웅이가 마시고 있는 감로수는 석굴암 본존불을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용천수였답니다.

현재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지만요.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은 여름철이 되면 항상 동해의 해풍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여름철이면 동해의 고온 다습한 공기가 석굴 내부로 들어오게 되므로 내부의 차가운 벽면과 만나게 되면 물방울을 맺게 된다고 해요..
그렇게 되면 내부의 많은 조상들과 본존불은 심한 풍화작용을 일으키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당시 신라인들은 이 곳 석굴암 바닥으로 항상 영상 9도에서 13도가 되는 차가운 샘물이 흐르게 하였지요.

내부로 들어온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더 차가운 바닥에 습기를 빼앗겨 버리고 내부 벽면은 항상 건조할 수가 있었던 것이랍니다. 이러한 장치로서 당시 신라인들은 약 1200년 동안을 습기로부터 무사히 석굴암을 보존 할 수가 있었던 것이예요.

 

 

이렇듯 중요한 역할을 하던 감로수를 일제강점기때 보수공사를 하면서 물길을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리고 말았다고 하네요.

경주를 돌아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도 석굴암이라는 너무나 위대한 문화재가 후손들이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므로써 콘크리트와 시멘트 투성이로 남아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지요.

 

마침 다른 팀을 이끌고 온 문화해설사의 위트있는 설명을 듣고 있자니 가슴 깊은 곳에서 불끈한게 치밀어 오르더라구요.

참으로 애석한 우리 역사의 현장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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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큰 돌이 여기저기 놓여 있어요.

석굴암을 해체하고 복원작업을 하면서 제대로 끼워놓지 못하여 남게 된 원래의 석굴암 돌이라네요.

그러니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석굴암은 언제가는 펑하니 무너져 버릴 수도 있는 문화재라는 것이지요.

퍼즐의 한 조각도 아니고, 돔형태의 석굴조각이 제대로 맞춰져 있지 않다면 어딘가는 허술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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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문화해설사가 아이들에게 그러더군요.

동해에서 해가 뜨면 가장 먼저 비추는 곳이 토함산이고, 그 토함산 정상 부근에 석굴암이 있다.

석굴암안으로 동해의 햇살이 비추면 본존불 이마에 있는 황수정에 반짝 하고 비추고,

그 빛은 다시 동해로 반사되어진다.

그리하면..... 동해가 쫙----- 갈라지면서 랄라랄~라 로보트야 ♪~♬

태권브이가 날아오른다고... ㅋㅋ

이 애길 시작하니 아이들 눈이 똥그래지고, 선웅이는 연신 정말? 정말? 이러더군요.

태권브이는 두대였나봐요. 63빌딩에 하나, 동해바다에 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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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문화해설사들의 공통된 특징을 발견했어요.

국사책, 아니 정확하게는 시험에 나와서 그런건지 문화재를 설명할 때는 

"중요한게 이것이다. 이걸 주의깊게 보고 들어라. " 이런 얘길 여러 차례 하더라구요.

다른 팀 해설사였지만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무척 고마웠어요.

석굴암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고,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지요.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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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을 내려와서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그 바람이 너무 시원해서 자리를 뜨기 싫을 정도였답니다.

주변에서 파는 오디를 사먹었는데, 이런이런..쯧.

종이컵 가득 들어 있는 오디가 보이는 곳엔 멀쩡한 것이 들어 있었지만 컵안쪽에는 언제 땄는지 확인조차 불가능한 상한 오디들로 채워져 있더군요. 제주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행태를 제가 외지인 되어 여기서 만나니 정말 씁쓸했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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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은 곳으로 유명한 기림사에 갔어요.

함월산에 위치한 기림사는 경주에서 추령재를 넘어 감포방향으로 한참을 가야 했어요.

기림사는 원래 임정사라고 불리던 선종의 고찰이었는데 선덕여왕 12년(643년)에 하늘기둥을 깍은 후 다시 승문에 들어간 원효에 의해 기림사로 개칭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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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산사의 모습을 담고 인적도 없어서 사찰 본연의 모습을 느낄 수가 있었답니다.

예전에 송광사나, 화엄사, 해인사 등의 유명 사찰을 갔을 적에 느꼈던 소란스러움이 없어서 동생도, 나도 무척 맘에 들었어요.

그리고 선웅이 뒤로 보이는 진남루는 선덕여왕때 지어진 것이라고 해요.

건물 전체가 원목도 아니고 참으로 독특한 색을 띠고 있었어요.

사진상으로는 표현이 안되었지만 평소 우리가 많이 봐 오던 사찰건물하고는 아주 다른 느낌이었지요.

대웅전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구석쪽 건물에서 열댓명이 모여 노래연습을 하고 있더군요.

"아름다운 제주, 혼저옵써.."  뭐 이 비스므레한 노랫말로 소리높여 부르고 있더라구요.

어찌나 반갑던지, 외국에 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그 기분, 기림사에 가서 맛보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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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허탈했던 곳이예요.

한참을 달려 동해까지 왔는데 기억에 있었던 역사의 모습은 사라지고

해수욕장에서 신나게 떠들고, 오징어 구워먹는  모습만 남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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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허무해서 문무왕이 아버지를 그리며 아버지의 묘를 바라봤다는 이견대까지 가 볼까 하다가

다시 경주로 되돌아가서 봐야 할 여정을 생각해 그냥 발길을 돌렸습니다.

바다로 간 김에 바닷물에 첨벙 들어간 선웅이는 신발도 다 젖고, 해수욕장 슈퍼에서 산 아이스크림은 봉지밑이 다 터졌고..

먼 길까지 갔는데...

 

저어기 선웅이 뒤로 보이는 바위섬이 문무대왕릉입니다.

주차비를 받으시던 아저씨 말씀으로는 저 바위밑에 아무  것도 없답니다.

몇년 전에 KBS 스페셜인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바다밑을 조사했는데 무덤도 없고 그냥 바위였다고...

그냥 불교의 나라였으니 화장해서 저 바위 위에서 뿌린게 아니겠냐고 말씀하시더군요.

아저씨 말씀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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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참을 달려 경주시내로 들어왔습니다.

구석에 위치한 신라역사과학관에 갔어요.

다른 전시물을 제껴두고 이곳은 석굴암과 첨성대를 내부모형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 볼만 합니다.

입장료도 저렴하고, 석굴암과 첨성대의 내부모형을 아주 자세하게 만들어 놓았어요.

 

 

유리창 밖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석굴암을 세밀하게 쪼개어 가까이서 살펴보니 이해가 잘 되더라구요. 

석굴암의 내부 모습과 감로수의 역할, 팔뚝살이 어떻게 돔을 지탱하는 지도 알게 되었구요.

 

 

첨성대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올라가 별을 쳐다 보았는지 알게 되었답니다.

 

 

첨성대의 네모난 출입문까지는 안쪽으로 흙을 이용해 쌓아 두었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흔들림없이 지탱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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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을 위해 지어졌다는 분황사랍니다.

분황이란 부드럽고 향기로운 황제라는 뜻이라는군요.

옆쪽의 황룡사는 복원작업중이라 볼 수가 없었어요.

분황사 모전석탑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선웅.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처럼 깍아 쌓은 탑을 말해요. 원래 벽돌은 흙을 구워 만드는데, 그런 벽돌을 흉내냈다고 하는 거지요.

지금은 3층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처음엔 9층 또는 7층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어요.

모전석탑을 지키고 있는 사자 네 마리중에 두 마리는 소실되어 새로 복원했다고 하는데

직접 보면 예전 것과 복원한 사자의 기품이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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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내 보광전 옆으로 조그마한 부처가 있는데 주변에 소원을 비는 돌이 층층 겹겹 쌓여 있더군요,.

이걸 본 선웅이도 소원을 빈다면서 돌을 쌓는데 하필 부처 머리위에 얹는군요. 에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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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 돌아본 곳 중 가장 번잡한 도로를 지나쳐 도착한 곳입니다.

제주로 돌아올 때서야 알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버스터미널이었던거예요. 어쩐지..

하지만 막상 도착한 김유신 장군묘 또한 사람들이 별로 없고 조용하더군요.

더워서 쮸쮸바 하나 손에 들고 놀상놀상 걸어 올라가 묘를 한바퀴 돌아봤어요.

제 보폭으로 90걸음, 선웅이 보폭으로 110걸음이나 되는 커다란 장군의 묘를 보니 당시 신라를 쥐고 흔들며 호령했던, 왕보다도 더 높았을 것 같은 장군의 위세가 느껴지는 듯 했어요.

불교에서 서쪽은 극락을 뜻하는데, 태종무열왕이나 김유신장군의 묘가 위치가 곳이 경주의 서쪽이라고 하네요.

삼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나라, 신라를 만드는데 힘쓴 두 영웅은 반드시 극락에 갈거라는 신라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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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는 테마투어버스 일정에 들어 있어서 안압지를 빼고 그 뒷편에 가득찬 연꽃 야경을 보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여름인데다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인지 해가 아직도 하늘 높이 걸려 있어서 야경은 보지 못했어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날 수 었었지요.

연꽃밭이 어마어마하게 펼쳐져 있고, 도로 건너편에는 주황색 코스모스 밭이... 장관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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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끝나는 사진 너머에 안압지가 있어요.

해가 지기를 기다리다가 섹쉬한 선웅이의 옆라인을 살짝 찍어 보았지요. ㅋㅋ

30분 넘게 기다려도 해가 질 생각은 없고 배는 고프고 해서 야경은 포기했답니다.

대릉원 방향으로 가다가 유명하다는 도솔마을에 가서 저녁을 먹었어요.

깔끔하니 어제 먹었던 쌈밥과 비교되고 괜찮더라구요.

제주 삼도동의 시민회관 근처의 학고재 분위기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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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마을 입구의 솟대입니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일몰이 진행중이었는데 그 하늘 위로 높게 솟은 솟대가 인상적이어서요.

안압지 연꽃야경을 보고 싶었지만 배가 뽕뽕하게 부르니 쉬고만 싶어서...호텔로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