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과 길 -남원읍 의귀리
제주 4.3연구소에서 개최하는 역사교실
오늘 갈 곳 = 약 15km
의귀리사무소 -2연대 1대대 2중대 주둔지 - 무장대 희생터-현의합장묘 희생자 학살터 - (구) 현의합장묘역
- 헌마공신 김만일 묘 - (신)현의합장묘역 - 이맹이물 - 영궤모루주둔소 터 -4.3피난처 영궤
- 송령이골 무장대 희생자묘 - 의귀리사무소
의귀초등학교
1948년 12월 26일부터 1949년 1월 20일까지
육지에서 파견된 2연대 1대대 2중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오늘 길 안내를 맡아주실 양봉찬 어르신과 의귀리장님.
무장대 희생터.
의귀초등학교 북쪽 우영팟으로 1949년 1월 12일 무장대의 군부대 습격 당시 교전 중에
군인이 쏜 기관총에 맞아 사망한 무장대의 시신들이 널부러진 채 약 1년간 방치되어 있던 곳이다.
1년 뒤 의귀리가 재건되면서 이 곳의 시신들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송령이골에 수습되었다.
1949년 1월 10일 30여명, 1월 12일 80여명의 주민들이
의귀국민학교에 주둔한 2연대 1대대 2중대에 의해 총살된 곳이다.
이 곳에 흙만 씌운 채 아무렇게나 버려졌던 희생자들의 시신 일부는
1년쯤 지난 1950년 마을 재건 즈음에 유족들이 찾아갔다.
찾아가지 않은 나머지 시신들은 토벌대의 명령에 따라 민보단에 의해 들것에 실려
(구) 현의합장묘역에 집단 매장되었다.
(구) 현의합장묘역
의귀국민학교 동녁밭에서 총살당한 희생자들의 시신을 집단매장한 곳이다.
이후 이 곳에 가족이 매장되어 있다고 확신하는 유족들을 중심으로 봉분을 쌓고 성묘를 하며 1976년경 '삼묘동친회'를 결성했다.
세 무덤에 묻힌 사람의 후손들은 같은 친척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1983년경 '현의합장요'비석을 세웠다.
현재는 묘역 수망리로 다시 옮겨 재조성되었으며 이곳엔 현의합장영령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세 군데 구덩이에 희생자들을 아무렇게 묻었다고 한다.
이 바위들은 세 군데 놓여 있는데
당시 희생자들이 묻혔던 세 구덩이들을 표시하고 있다.
제주의 인물 중 가장 높은 관직에 올랐던 김만일의 묘다.
조선조 선조때부터 말을 헌납한 공으로 관이 부총관에 이르렀으며
이후 자손들이 세습감목관을 지내는 등 제주목장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겼다.
김만일 묘의 동자석 4기가 경기도에 반출되었다가 다시 찾아 왔으나
이후 다시 도둑맞아 현재 동자석이 있던 자리는 움푹 패인 채 흔적만 남아 있다.
(신) 현의합장묘역
2003년 9월 의귀리에 있던 현의합장묘역을 수망리인 이곳으로 옮겨와 재조성한 곳이다.
묘역에는 전시관과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주변은 잔디밭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전시관에서는 현의합장묘역과 4.3당시를 설명해주는 동영상을 볼 수 있고,
발굴, 이장 당시의 사진자료를 볼 수 있다.
동영상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 깊은 곳에서 울음이 올라왔다.
물 나는 이맹이물
의귀리 공동목장을 입구를 통과하여 올라가다보면
길 북쪽에 이마처럼 튀어나왔다 하여 지어진 이맹이물을 만날 수 있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고 한다. 소들의 식수로 사용한다고 한다.
의귀리 공동목장에서 키우고 있는 소떼.
50만평이 넘는 넓은 지역에 풀어놓고 키우고 있는 약 500여마리의 소. 주로 암소다.
영군모루 주둔소 터
1948년 12월 하순부터 1949년 1월 중순까지 의귀국민학교에 주둔했던 2연대 1대대 2중대 군인들의 전방초소.
이후 경찰주둔소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고 한다.
당시엔 넓게 반공호처럼 돌담을 쌓았다고 하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초소에 바라본 의귀리 공동목장 지역.
군데군데 보이는 돌담이 둘러친 묘소들은 김만일의 자손인 경주김씨 일가의 묘.
15km이라는 길이 생각외로 너무 힘들어서
뒷쪽 일행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쉬고 있는 일행들.,
의귀리 부녀회장님과 의귀리의 날쌘돌이 준호
목장 사이길에 핀 억새가 가을 향기를 물씬 풍긴다.
의귀국민학교 전투에서 사망한 무장대의 시신이 집단 매장된 곳이다.
이곳은 현재 돌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묘인지 모를 정도로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2004년 5월 14일 생명평화탁발순례단, 4.3연구소, 현의합장유족회 등이 함께
이 곳을 벌초하여 표지판을 세우고 천도제를 올렸다.
그 이후 8월 15일에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벌초를 하고 있다.
현재 이 곳 희생자의 유족은 아무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