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보따리/예술은 어려워
거울 보는 여자
검피아줌마
2007. 9. 21. 01:37
[그림이야기]③자신을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거울 보는 여자 | ||||||||||||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마음은 복잡하다.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비너스부터 보테로의 ‘아침욕실’에서 손 거울로 얼굴만을 보고 있는 비만 여성까지. 아름다움을 맘껏 과시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단점을 감추려는 앙증맞은 외면. 거울은 여성의 욕망을 대변한다.
여자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울을 보는 것이 아니다. 여자는 자신에게 사랑을 전하기 위해 거울을 본다. 하루 종일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넘치는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싶다면 여자는 거울을 자주 보아야 한다. 거울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진화시킬 뿐만 아니라 의사 역할도 해준다. 거울은 여자의 정신 건강에 최고의 명약이다. 거울을 통해 여자는 성장한다. 거울을 자주 보는 여자는 좀 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할 줄 안다. 자신과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기 때문이다. 아무리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라도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을 하면 사랑받기보다는 외면받기 십상이다. 여자는 남의 시선에서 빛이 나야 한다. 골방에 앉아 가꾸지도 않고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으면 태양은 결코 비추지 않는다. 여자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고 그 사랑으로 빛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받고 싶다면 거울속의 자신을 자주 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어떻게 연출해야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는 거울을 통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비너스가 가장 사랑하는 상대는 자기 자신이었다. 비너스는 자기를 치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화가들은 자신을 가꾸는 비너스를 즐겨 그렸는데 그것은 당시 현실 속의 여인의 모습을 표현하면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도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거울 위에 포개져 있는 큐피드의 손목에 리본이 드리워져 있다. 이는 비너스의 아름다움과 함께 큐피드와 모자지간이라는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청색과 은색의 침대 시트는 비너스의 자세로 흐트러져 있다. 벨라스케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거울의 효과에 관심을 가졌고 화면 속에 허구의 공간까지 보여주기를 원했다. 이 작품은 거울을 이용한 그의 작품 중에 하나이면서 벨라스케스의 유일한 누드화다. 하지만 이 거울 속의 비너스는 잘못된 각도다. 비너스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표현했다. 이 작품은 동시대의 누드화에서 보여주었던 풍만함에서 벗어나 당시에 획기적으로 누드를 날씬하게 그려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이 작품은 1600년대 스페인 회화에서 볼 수 없는 파격적인 소재였다. 벨라스케스가 1649년부터 1651년까지 로마에 두 번째로 체류하고 있던 중 당시 스무 살이었던 자신의 정부를 표현한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정부에게 실제로 관능적인 포즈를 요구했는데 이 여인은 로마의 상류층 여인으로 벨라스케스의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면서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는 여자가 없다. 특히 아름다운 여자일수록 거울 보는 시간이 긴 것은 거울 속의 자신이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그 어떤 것보다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거울이다. 거울을 보는 여인이 사랑스러운 것은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농염한 여인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서다.
거울 보는 여인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져 다른 곳에 시선을 두지 않고 있다. 누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지금 오로지 자신에게 열중해 있을 뿐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여인은 몸과 마음이 풀어져 있다. 그녀의 붉은빛이 감도는 얼굴은 경계가 사라진 마음을 묘사한 것이다. 즉, 사랑받기 위해 거울을 놓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인 것이다. 마음이 풀어진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쉽게 받아들인다. 이것저것 마음의 자로 재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런 남자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쿠르베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화가 자신만 바라보고 있기를 바라는 욕망을 표현했다.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는 이 작품 속의 아일랜드 여인 조안나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는 화가 휘슬러의 정부로서 쿠르베 작품의 모델이 된다. 쿠르베는 많은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지만 귀족적인 여인보다는 세속적이면서 퇴폐적인 느낌이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에 빠져 있던 쿠르베는 이 작품을 네 점 이상 반복해서 그렸다. 이 작품은 그가 팔기를 거부하고 평생 간직했던 작품이다. 거울은 누구와도 자신을 비교하지 않지만 속임수는 결코 없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뛰어나게 자기 연출을 잘한다 해도 미모가 하늘에까지 소문이 났다고 해도 몸이 따라주어야 한다. 절세가인이라고 해도 요즘 뚱뚱하면 아름다움은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얼굴보다는 몸매의 아름다움을 더 평가하는 시대다. 통통함을 넘어 뚱뚱한 여인에게 여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비만의 그녀들은 설 자리가 없다. 아름답고 싶다면 얼굴을 가꾸는 시간의 두 배의 노력으로 몸매를 가꾸어야 한다. 그것만이 여자로서 빛이 될 수 있는 기회다. 보테로의 ‘아침욕실’ 이 작품은 비만의 여성이 욕실에서 나와 거울을 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침대 앞에 대형 거울이 있음에도 뚱뚱한 여인은 작은 손거울로 자신을 보고 있다. 작은 거울 속 여인의 얼굴은 거울의 크기만큼이나 작다. 여인은 자신을 지금 속이고 있는 것이다.
페르난도 보테로(1932~)는 뚱뚱한 사람들을 즐겨 그린다.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비틀어서 과장되게 표현한다. 이 작품 속의 여인도 그의 작품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위해 거울을 보기도 하지만 직업상 거울을 자주 보아야 하는 여자가 있다. 스러져가는 자신의 젊음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옷을 벗고 거울 앞에서 설 수밖에 없는 서글픔도 배어 있다. 로트레크의 ‘거울 앞에 선 누드 여인’ 이 작품에서 거울 앞에 서 있는 매춘부는 너무나 평범한 검은 스타킹을 신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손에는 방금 벗은 듯한 블라우스가 들려 있다. 이 작품에서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손님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지만 매춘부의 부드럽고 탱탱한 젊은 육체는 남자에게 사랑을 받는 시간은 짧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 화면 왼쪽에 헝클어진 침대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나이 들면 매춘부는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작품에서 로트레크는 남자에게 상처받는 매춘부의 마음과 시들어가는 육체의 덧없음을 표현했다. 앙리 드 로트레크(1864~1901)는 사창가에 살면서 매춘부들의 일상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거울 앞에 서 있는 여자는 상처받은 모습, 일상적인 생활을 묘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