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보따리/예술은 어려워

술로 유혹하는 남과 여

검피아줌마 2007. 9. 21. 01:33
박희숙의 명화읽기 |술로 유혹하는 남과 여
이코노믹리뷰 | 기사입력 2007-09-01 14:00 | 최종수정 2007-09-01 14:18

세상에 내 자리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순간 그 자리는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다. 돌아갈 자리가 분명히 있건만 막상 돌아가려고 하면 쉴 곳조차 없는 것이 세상이다. 정말 현실은 마음 붙일 곳 하나 만들어 놓지 않고 밖으로 내몬다.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현실을 가장 빠르고 가장 쉽게 잊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술이다. 술에 취하면 술잔 속에 빠져 있는 외로움, 슬픔, 절망은 마시고 술잔 밖으로는 자신감을 놓아두기 때문이다.

술은 넘치는 자신감도 주지만 쉽게 마음을 열게도 해준다. 술을 마실수록 주변의 모든 사람은 처음 만나도 친구가 되고 형제도 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연인 사이가 된다. 어색했던 만남이 술로 인해 오래 만난 사이처럼 되는 것이다.

한편 술에 취하면 외모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해지면서 행동의 자유로움까지 덤으로 얻게돼 평소와 다르게 대범해진다. 마음에 두고 있던 상대에게 말을 걸지 못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은 사람도 술에 취하면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놓고 말하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유혹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술을 이용한다. 술에 취하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유혹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상대를 손쉽게 무너뜨리기 위해서 술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술로 유혹하는 여자]
존 워터하우스의 ‘오디세우스에게 술잔을 권하는 키르케’

남자는 술에 취하면 앞에 앉아 있는 여자가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술에 취하면 제 정신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남자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여자는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서 술을 권하고, 술 취한 남자는 사랑이 고픈 것이 아니라 허기진 본능을 채우기 위해 애쓴다. 그래서 여자 선수는 남자가 술에 취하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기에 술을 유혹의 필수 조건으로 생각한다.

존 워터하우스(1849~1917)의 ‘오디세우스에게 술잔을 권하는 키르케’는 술로 유혹하는 여인의 냉혹함을 표현한 작품이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 키르케는 아름다운 외모와 농염한 육체의 소유자다. 그녀는 관능적인 외모 외에 특별한 재능인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을 시켜 키르케 섬을 정찰하게 했다. 부하들은 계곡을 지나 키르케의 궁전을 발견한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자신의 궁전으로 초대한다. 궁전에 초대를 받은 부하들은 키르케의 마법에 걸려 모두 돼지로 변하고 만다. 분노한 오디세우스는 헤르메스 신의 도움을 받아 키르케의 마법을 퇴치한다. 마법의 힘이 통하지 않자 키르케는 자신의 관능적인 육체를 이용해 오디세우스에게 마법의 술을 권한다. 술에 취한 오디세우스는 무분별한 욕망에 황망하게 무너져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키르케는 매혹적인 몸매가 다 보이는 옷을 입고 오디세우스에게 술을 권하고 있다. 그녀의 왼손에 들려있는 마술지팡이는 오디세우스가 술에 취하기만 바라고 있다. 마법의 지팡이가 술에 취한 남자를 치는 순간 돼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의 모습은 거울에 희미하게 모습을 비치고 그녀의 발밑에는 돼지로 변한 남자들이 있다.

존 워터하우스는 이 작품에서 키르케를 화면 정면에 당당하게 내세웠고 영웅 오디세우스는 희미하게 표현했는데 그것은 여자의 유혹이 강렬해서 한번 빠지면 남자는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디세우스에게 술잔을 권하는 키르케 ,1891년, 캔버스에 유채, 149×92, 올덤 아트 갤러리 소장》

[술로 유혹하는 남자]
얀 베르메르의 ‘포도주 잔을 든 여인’

남자는 눈으로 사랑을 하고 여자는 귀로 사랑을 한다. 카사노바는 ‘세상에 너처럼 아름다운 여자는 보지 못했다’ 라든가 ‘너만을 사랑해’라는 말로 유혹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남발하고 이것이 홍보용 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을 아름답다고 하는 데 싫다는 여자는 없다. 하지만 의심 많은 중국인을 닮은 여자는 남자의 사탕발림을 믿지 않는다. 남자에 대한 경계심으로 똘똘 뭉친 여자를 만나 유혹하기 힘들 때 남자는 여자에게 술을 권한다. 술에 취한 여자의 남자에 대한 경계심은 무너져 버리고 카사노바나 근처에 있는 남자는 경계심이 풀어진 여자를 쉽게 사랑할 수 있다.

얀 베르메르(1632~1675)의 ‘포도주 잔을 든 여인’은 남자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는 여자를 묘사한 작품이다. 네 개의 꽃잎으로 장식된 창문 앞에 세 사람은 앉아 있다. 붉은 옷의 여인이 포도주 잔을 들고 있고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술을 권하고 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시선을 피해 웃고 있다.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남자가 앉아 있는 탁자 위에는 흰 도자기 병과 쟁반에 레몬이 놓여져 있다. 그 뒤로 남자의 초상화가 보인다.

이 작품에서 도자기 병에 담긴 것은 포도주다. 포도주는 그 당시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사랑의 묘약으로 사용되었다. 화면 중앙에 있는 남자는 부풀어 오른 옷을 입고 포도주 잔을 들고 있는 여인에게 술을 권하고 있다. 여인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듯 포도주 잔을 입에 대고 있지는 않다. 탁자에 앉아 있는 남자는 이미 포도주를 마신 상태며 그 남자를 위해 화면 중앙에 있는 남자가 여자에게 포도주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의 얼굴을 살피는 남자가 이 작품에서 뚜쟁이다. 뒤에 결려 있는 남자의 초상화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초상화 속의 남자는 여인의 남편이다. 세 사람 앞에 있는 반쯤 열린 창문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절제를 상징하는 인물이 새겨져 있으며 여인의 시선 방향으로 열려 있는 창문은 여인에게 향하는 경고의 메시지다. 얀 베르메르의 이 작품은 그 당시 법률문서에 나오는, 남편이 없는 사이 혼외정사를 모의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포도주 잔을 든 여인, 1659~1660년경, 캔버스에 유채, 78×67, 브라운슈바이크 헤르조크 안톤 올리히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