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보따리/이 한권의 책

개밥바라기별

검피아줌마 2009. 2. 1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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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소설/ 문학동네

 

어제 오후에서야 갑자기 수업을 받는 아이들 중 3명이 오지 못한다고 연락이 와서 오늘 수업 접었습니다.

오후에 수업이 없다는 사실이 제겐 생각치도 않은 포상휴가를 받은 듯한 기분이 들게 하더군요.

뭘 할까? 뒹글거리다가

꽉찬 책장에서조차 버림받아 책상위 다른 책들틈에 끼여 있던 이 책을 발견했어요.

 

제가 20대 초반에 황석영작가를 무지 좋아했었어요.

그의 작품인 객지, 삼포가는 길, 무기의 그늘 읽으며...

그러던 중에 방북했다더라, 외국에 갔다더라, 그리곤 귀국해선 형을 살고 있다더라...

참, 이 양반도 세상을 어렵게 사는 사람이구나 했었지요.

 

신문에 연재되던 '바리데기'를 보고 당연한 의무처럼 책을 구입했지만,

책장속에서 먼지만 뒤집어쓴 채 얌전히 꽂혀 있은 지 한참이나 되었지요. 그냥 안읽히더라구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려고 클릭하는 순간, 제 눈앞에 짜잔! 하고 '개밥바리기 별'이 나타나더군요.

이상하게 또 구매에 클릭하고 있더라구요.

배송을 받고 읽어보자 그러고서는 책상위에 내던져 있던 거였지요.

 

오늘 맘먹고(?) 읽었습니다.

어떤 이는 진도가 안나간다고 하던데, 전 이상하게 술~~~술 읽었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알고 있던 황석영 작가의 글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게 했지만, 읽기에 그리 부담있는 책은 아니였어요.

물론 화자가 7명이나 등장해서 무턱대고 읽다보면 어, 아까와는 다른 녀석이네 ...이럴 수도 있겠지만.

 

1960년대가 배경인 소설 속엔 젊은 황석영이 있습니다.

그가 느끼고 보고, 겪었던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요.

어려운 생활이 있고, 지금과 별반 다른게 없는 학교가 있고, 경쟁이 있습니다.

유준이 겪었던 방황이 기간의 짧고 긴 차이가 있을 뿐 나에게도 있었다는 걸 생각해 냅니다..

나에게는 집을 뛰쳐나갈, 약을 입속에 털어 넣을  용기가 없었을 뿐이지요.

그래서 웹2.0이라 불리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 소설에 열광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나도 그랬어, 나도 저런 기분이 들었다니까. 힘들어 미칠 뻔 했어... 이러면서 공감했나 봐요.

그리곤 작가가 하는 말에 크게 용기를 얻었을 지도 모르구요.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게 때문이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한번쯤 머리를 끌어안고 술집에 앉아 울먹어야 하지요.

예전엔 그 술이 막걸리였는데, 우리 때는 소주와 맥주였고, 요즘은 와인이라네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그 차이가 무섭게 다가와요. 

주인공 유준과 친구 인호가 무전배낭여행을 가다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헤꼬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에 사로잡힌 우리들의 모습과는 영 딴판입니다.

조가 많이 섞인 밥과 김치뿐이더라도 스스럼없이 지나가는 주인공을 붙잡아 함께 먹기를 권하고,

기차칸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집을 알려주며 꼭 놀러오라고 말하는 후덕함이 있어요.

낯선 이가 다가와 길을 물어봐도 경계의 눈을 보내는 우리들에겐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거지요.

이런 차이를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어요.

 

책을 읽다보면 그 시절의 작가에게는 너무나 힘들었던 때였겠지만

독자인 제가 보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돌아가고픈 시절이네요.

제가 힘들었던 나날도 다른 사람의 눈엔 저리 보였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나저나...

준이를 사랑했던 미아가 준이에게 보낸 관제엽서가 생각나는군요.

 

바람 피해 오시는 이처럼 문득, 전화하면

누가 뭐래요? 

 

생각해보면 그리웠던 시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게 바람피해 오시는 이처럼

문득... 전화 한 통 해주세요.....지금요.

 

참, '개밥바라기 별'은 금성을 뜻해요.

금성이 새벽에 동쪽에 나타날 때는 '샛별'이라고 부르지만, 저녁에 나타날 때는 '개밥바라기'라고 부른대요.

즉,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하늘에 나타난다고 그렇게 부른다네요. 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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